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 호포드 (문단 편집) ==== [[애틀란타 호크스]] ==== [[파일:external/cdn.fansided.com/al-horford-nba-detroit-pistons-atlanta-hawks1.jpg|width=600]] 07년 드래프트 최대어는 장차 리그를 이끌 센터감이라고 주목받던 오하이오 주립대의 그렉 오든과 대학선수가 받는 상이란 상은 싸그리 휩쓸어간 텍사스 대학의 [[케빈 듀란트]]였고 사실상 1픽과 2픽은 확정이었다. 오든과 듀란트를 제외하면 호포드가 가장 NBA에 준비된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고 아니나다를까 [[애틀란타 호크스]]가 3픽으로 호포드를 지명한다. 애틀란타는 호포드 드래프트 전까지 2000년 이후 단 한번도 플레이오프 진출을 못하고 있던 약체였다. 수준급 [[슈팅 가드]]인 [[조 존슨]]과 운동능력이 좋은 포워드 [[조쉬 스미스]]가 끙끙대고 있었지만 2006-07 시즌 성적은 30승 52패로 부진했고, 게다가 05년 드래프트에서 마빈 윌리엄스, 06년 드래프트에서 쉘던 윌리엄스를 뽑으면서 포워드진이 바글바글했다. 거기에 또다시 [[파워 포워드]]인 호포드를 뽑은 상황. 그러나 호포드는 이전의 실패작들과는 달리 데뷔하자마자 주전 [[센터(농구)|센터]] 자리에 잘 적응을 했고 시즌 평균 10.1 득점 9.7 리바운드로 더블-더블에 가까운 준수한 성적을 거둔다. 신인상 투표에서 2위를 했으며 만장일치로 루키 퍼스트팀에 선정되며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다. 팀도 37승 45패의 성적으로 플레이오프에 턱걸이 진출에 성공, 1차전에서 빅3를 결성한 [[보스턴 셀틱스]]를 7차전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기록했다. 다음 시즌부터 애틀란타는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하면서 꾸준히 플레이오프 진출을 하는 팀으로 변모했고 호포드는 솔리드한 활약을 하는 빅맨으로 정착, 애틀란타의 골밑을 지키면서 공격에서도 데뷔 이후 계속 스탯이 상승하면서 데뷔 3년차인 2009-10 시즌에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고, 이듬해에는 NBA 서드팀에도 뽑히며 스타플레이어 대열에 합류한다. 애틀란타는 이에 5년 $60M이라는 적절한 계약으로 보답한다. 2012년 1월, 호포드는 흉근 부상 때문에 남은 시즌 동안 뛰지 못하는 악재를 겪었고 보스턴과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복귀했지만 애틀란타의 1라운드 탈락을 막지는 못했다. 팀이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조 존슨이 [[브루클린 네츠]]로 떠난 2012-13 시즌,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더블-더블 시즌(17.4득점 10.2 리바운드)를 경험하지만 7할은 넘겨주던 자유투 성공률이 64%까지 떨어졌고 올스타와 NBA팀에 선발되지도 못했다. 이후 조쉬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트레이드되면서 다음 시즌부터는 사실상 팀의 리더가 될 예정이다. 2013-14 시즌 평균 18.6득점 8.4 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애틀란타의 기둥으로 버티고 있었으나 12월 27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전에서 오른쪽 가슴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면서 무기한 아웃을 당하고 만다. 이후 한때 3위도 찍었던 애틀란타는 기나긴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TD]]를 겪으며 8위로 추락했다. 다음 시즌에 복귀는 했으나 팀 전술의 주도권이 폴 밀샙과 제프 티그에게 넘어간 뒤라 두드러진 활약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애틀란타는 멤버들의 고른 활약을 토대로 동부 컨퍼런스 최고의 팀 중 하나로 올라선 상태. 밀샙과 티그가 빠진 1월 13일 경기에서 커리어 첫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고 오랜만에 올스타전에 다시 출전했다. 플레이오프 세미파이널에서는 5차전에 [[폴 피어스]]가 게임 종료 8초 전에 역전 3점을 넣으며 패배할 뻔 했지만 마지막 공격에서 공격 리바운드를 따낸 뒤 단 2초를 남기고 재역전시키는데 성공해 승리를 이끌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